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이 마운트배튼 (문단 편집) == 기타 == * 선대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인 [[필립 마운트배튼]]의 외삼촌으로 그의 후견인인 외삼촌 조지 마운트배튼이 사망한 이후로는 거의 아버지 역할을 대신했다. 본래 필립 마운트배튼의 성인 마운트배튼도 외가의 성으로 바꾼 것.[* 원래는 본가 성인 올덴부르크를 번역한 올드캐슬을 제안 받았으나,(필립의 친가인 [[글뤽스부르크 왕조|글뤽스부르크 왕가]]는 [[덴마크]] [[올덴부르크 왕조|올덴부르크 왕가]]에서 파생되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 마운트배튼으로 성을 정한 것.] 노년기에는 경험이 없어 혼란스러워하던 [[찰스 3세]]의 멘토를 해주며 친할아버지와 손자처럼 지냈다고 한다.[* [[찰스 3세]]의 친할아버지는 [[그리스와 덴마크의 안드레아스]] 왕자이다.] * 루이 마운트배튼의 어머니인 [[헤센의 공녀 빅토리아]]의 여동생이 [[니콜라이 2세]]의 아내 [[헤센의 알릭스]]였다. 그 때문에 루이는 이모의 시가였던 [[러시아 제국]]에 방문했다가, 한 살 연상의 이종사촌 누나인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마리야 여대공]]을 짝사랑하게 되었다. 아래에 나오는 1968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보면 루이는 마리야 여대공과 결혼하고 싶었다고 고백했으며, 폭탄 테러로 죽는 그날까지 루이의 서재에는 마리야의 사진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결혼생활을 생각한다면 의외의 면모가 있던 셈. * 그가 사망한 지 39년이 지난 [[2018년]], 새로 태어난 [[필립 마운트배튼|조카]]의 [[루이 아서 찰스|증손자]]에게 그의 이름을 기려서 '루이' 라는 이름을 퍼스트 네임에 넣게 되었다. '루이'라는 이름이 영국에서 인기가 없기 때문에[* 영국에서도 '루이스'는 루이의 영어식 이름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프랑스권의 이름이다.] 영국 왕자로서는 최초로 이 이름을 퍼스트 네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 루이 마운트배튼은 전기엔지니어협회(Institution of Electrical Engineers), 현재의 공학 및 기술협회(Institution of Engineering and Technology)의 회원이었다. 현재 IET에서는 매년 전자 또는 정보 기술 및 해당 응용 프로그램의 진흥에 탁월한 공헌을 한 이에게 [[https://en.wikipedia.org/wiki/IET_Mountbatten_Medal|마운트배튼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또한 1939년에는 군함이 다른 선박에 대해 고정된 위치를 유지하게 하는 시스템에 대한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https://archive.ph/20130105155508/http://www.wikipatents.com/gb/508956.html|#]] [[바텐베르크의 공자 루트비히|아버지]] 역시 두 척의 선박 사이의 상대 속도를 측정하는 [[https://en.wikipedia.org/wiki/Battenberg_course_indicator|기기]]를 고안한 적이 있으니 [[부전자전]]이라고 할 수 있다. * 버마의 마운트배튼 백작 가문은 2대 백작인 패트리샤가 [[찰스 3세]]의 대모였고 현 백작의 후계자(루이의 증손자)가 찰스 왕세자의 대자로, 현재에도 영국 왕실과 가장 가까운 귀족 가문이자 손에 꼽히는 명문가다. 마운트배튼 가문의 시초도 [[바텐베르크의 공자 루트비히|바텐베르크의 루트비히]]와 [[헤센의 공녀 빅토리아]]가 영국으로 귀화하면서 창설된 가문이다.[* 밀포드헤이븐 후작 가문. 루이의 형이 가문을 이어 받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루이 마운트배튼의 이모는 러시아의 황후 [[헤센의 알릭스|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그의 누나들인 [[바텐베르크의 공녀 앨리스|앨리스]]와 [[루이즈 마운트배튼|루이즈]]는 각각 그리스 및 덴마크의 왕자비, 스웨덴의 왕비였다. 또 모계로는 [[빅토리아 여왕]]의 혈통이 내려온다.[* 루이 마운트배튼의 어머니인 [[헤센의 공녀 빅토리아]]가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였다.] 향후에는 이런 뿌리깊은 귀족 가문이 왕실의 인척으로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 왕비인 [[카밀라 파커 볼스]]는 남작의 혈통이 흐른다지만 아버지가 평민이니 평민 가문이라봐도 무방하고, [[케이트 미들턴]] 역시 평민 가문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서깊은 백작 가문의 영애였던 [[다이애나 스펜서]]의 사례가 고전적이라면 고전적. 또 유럽 각국의 왕실들이 왕실, 귀족 혈통에 구애받지 않는 추세이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 사후에는 이런 가문이 왕실과 결혼하는 일도 찾아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 [[https://www.thetimes.co.uk/past-six-days/2019-08-18/news/lord-mountbattens-lust-for-young-men-revealed-90swzmgms|#]] [[더 타임스]]에서 충격적인 기사가 나왔다. [[FBI]]에서 기밀 해제된 문서들에서 나온 것으로 마운트배튼 백작이 양성애자였고 어린 남성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는 것으로, 당시 80대였던 데시 남작부인의 주장이 담겨있었다. 이후 1942년부터 1943년까지 일했던 운전 기사는 타블로이드에 마운트배튼이 어린 남성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고 타블로이드에 증언했다. 그러나 20년동안 그의 비서인 존 바랏은 그런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마운트배튼 경이 그런 일을 가까운 사이인 자기들에게 숨길 수 없다며 부인했다. 어떤 아동 보호시설 출신자들은 심지어 백작이 자신들이 아직 6-10세의 소년들이던 시절 [[페도필리아]] 행위를 가했다고 주장했으나, 피해 주장자들 및 시설에 대한 것은 북아일랜드 성학대 조사기관의 수사에서는 전혀 근거가 없다고 판명지었다. * 2021년에 아들이나 마찬가지였던 조카 [[필립 마운트배튼]]이 별세하면서 그 영향인지 IRA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던 [[신 페인]]당 측에서 루이 마운트배튼의 암살 사건 발생 42년만에 유감의 뜻을 표시했다.[[https://news.joins.com/article/24038482|# 국내 기사]] 백작의 암살에 대한 영국측의 반응을 힐난하는 논평을 낸 바가 있던 [[게리 아담스]][* 당시에는 영국에 저항하는 시민운동가 및 정치가로, 2018년까지 신 페인 당수로 재직.]는 "그 당시 주장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나는 말을 바꾸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행히 전쟁은 끝났습니다."라고 언급했다. * 1960년대에 배우 [[셜리 맥클레인]]과 오래 만남을 가졌다. * 신혼여행으로 미국에도 가 여러 유명인물들을 만났다. [[찰리 채플린]]과 친구가 되어 미공개 영화를 찍기도 했고 [[베이브 루스]]를 만난 적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